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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 내년도 예산안 9조 9220억 편성[충청남도=뉴스온라인 천민호 기자] 충남도는 6일, 충남의 50년, 100년 미래를 준비하는내년도 예산안 9조 9220억원을 편성해 도의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번 예산안은 일반회계 8조 8340억원, 특별회계 1조 880억원이다. 총 재정규모는 올해 본예산 9조 1643억원보다 7577억원(8.3%), 국고보조금의 경우 일반회계 본예산보다 3299억원(8.38%) 늘었다. 올해 제1회 추경예산 9조 8613억원과 비교하면 607억원(0.6%) 소폭 증가했다. 도는 소비심리 위축, 부동산 거래 정체 등 어려운 세입 여건에서도 도민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꼭 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재정을 투자했으며, 지방보조사업 운용 평가 강화와 보조비율 개선 등을 통해 재정의 효율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먼저, 농어업 구조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충남형 스마트팜 복합단지 조성 445억원 △임대형 스마트팜 단지 조성 198억원 △어촌뉴딜 300사업 239억원 △해양바이오 인증지원센터 건립 23억원 등 농어업 구조 개선 투자에 2017억원을 편성했다. 탄소중립경제 특별도로서 △바이오가스 활용 청정수소 생산시설 설치 90억원 △수소교통 복합기지 구축지원 47억원 △산업 디지털 전환 적합성 인증 및 실증기반 구축 20억원 등을 신규 투자하는 등 탄소중립경제 선도사업에 1746억원을 반영했다. 2차 공공기관 이전 대상기관의 정주환경 개선과 충남혁신도시 명품도시 완성을 위한 예산으로는 △충남도립미술관 건립 총사업비 1169억원 중 공사비 200억원 △혁신도시 복합혁신센터 건립 총사업비 198억원 중 설계비 10억원 △내포신도시 종합병원 지원비 1060억원 중 10억원 등을 담았다.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을 위해서는 △지방도 정비 1100억원 △서해선 복선전철 내포역 110억원 등을 투입한다. 재난·재해로부터 안전한 충남을 만들기 위한 예산은 △호우 피해지역 복구비 1025억원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정비 630억원 △풍수해생활권 종합정비 342억원 △산불 산림피해복구조림 41억원 등이다. 마지막으로 촘촘하고 두터운 복지지원을 위해 △충남권역 재활병원 건립 150억원 △노인일자리 통합지원센터 운영지원 8억원 △온종일 아동돌봄 통합지원단 운영 5억원을 신규 편성했고, 사회복지 분야는 일반회계 기준 2조 9570억원으로 전년대비 1946억원(7.04%) 증가했다. 아울러, 시군별 편차가 심했던 참전유공자 수당을 40만원으로 균일하게 상향 조정 지원하기 위해 △충남도 참전명예수당 164억원을 담았다. 박정주 도 기획조정실장은 “이번 예산안은 민선 8기 본격적인 성과내기를 위해 핵심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도민의 편안한 삶과 안전한 생활을 위해 신속하고 확실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편성했다”며 “예산안 확정 시 신속한 집행으로 도민들이 확실한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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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천안동남경찰서, 이건 집회도 아니고 기자회견도 아니여~[기고문] 천안동남경찰서, 이건 집회도 아니고 기자회견도 아니여~ 천안동남경찰서 경비작전계 집회담당 홍지영 경사 예전 개그콘서트에 “같기도” 라는 코너에서 “이건 A도 아니고 B도 아니여~”라는 유행어가 있었는데 우리 주변에 흔히 일어나는 애매한 상황을 재밌게 개그소재로 풍자하여 많은 웃음을 줬던 코너였다. 필자도 이러한 애매한 상황을 근무 중에 꽤나 겪었는데 주최단체에서는 기자회견이라고 하지만 단체로 피켓팅, 구호제창 등을 하는 점을 보면 분명 집회 였다. 이건 집회일까? 기자회견일까? ‘기자회견’은 ‘학문, 예술, 체육, 종교, 의식, 친목, 오락, 관혼상제 및 국경행사’ 등의 행사로서 집시법 15조에서 집회 신고, 금지, 제한 등의 적용을 배제하기 때문에 신고의무가 없다. 하지만 이런 기자회견이라고 하더라도 행사의 목적, 준비 물품, 구호 제창·피케팅 등의 여부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사실상 집회의 형식을 띠는 경우 기자회견이 아닌 집회시위로 관리하게 된다. 나아가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 안녕질서에 명백한 위험 초래 시 해산절차를 진행할 수도 있고 집회로 간주되기 때문에 개최하기 7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에 신고도 해야되는 의무도 주어지고 신고를 하지 않으면 미신고집회로 처벌된다. 이는 집회를 통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함이 아닌 함께 더불어사는 사회의 공공질서 유지를 위한 큰걸음으로 기자회견을 빙자한 집회는 근절해야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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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천안동남경찰서, 권리주장을 위한 집회가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을수 없습니다(천안동남경찰서 경비작전계 집회담당 홍지영 경사) [기고문] 권리주장을 위한 집회가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을수 없습니다 천안동남경찰서 경비작전계 집회담당 경사 홍지영 우리는 일상생활 중 많은 소음을 접하고 살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집회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소음이다. 집회현장에서 확성기 등을 통한 구호제창, 음악을 크게 트는 행위는 집회측에서 그들의 요구를 전달 하거나 집회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주변 주민들은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 집회참가자 대부분 이러한 확성기나 방송차의 소음 기준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잘하고 있으나, 일부는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음 유발 및 기준 초과로 인근 주민들의 불편을 초래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집회 자체에 대해 반감을 사게 하기도 한다.. 필자가 근무를 나간 집회 중 위와 같은 집회소음으로 인하여 가장 기억에 남는 집회 중 하나는 때는 2022년 5월 쯤 으로 기억한다. 그 날 집회참가자가 소음이 기준치가 넘었고 이에 강력히 경고조치를 했지만 지나가던 시민들은 이미 화가나서 필자에게 언성을 높여 하소연성의 불만 표시를 했고 필자는 이에 대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넘겼지만 필자가 정말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고 아직도 기억에 강하게 남는 것은 하나의 112신고였는데 그 신고내용은 신고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밤을 세워 일하고 낮에는 쪽잠을 자며 아이들을 어렵게 키우며 가정을 유지하고 있는 가장이었는데 신고자의 집 앞에 계속되는 집회소음으로 인하여 잠을 잘수가 없다는 내용이였다. 물론 헌법에서 보장하는 집회는 불가피하게 일정 수준의 소음 발생이 발생한다는 것을 감안해야되고 집회를 하는 권리도 지키고 존중해야되는것도 충분히 알고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소음으로 인하여 생계에 영향이 가고 그 영향이 커져 삶에 대한 의지마저 잃는다면 누가 책임을 져줄 것인가 하는 마음에 정말 속상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집회참가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이런 심각한 소음으로 인하여 피해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 또한 맞는 말이다. 어느 집회참가자 그 누구도 절대 정당한 권리행사를 넘어 집회·시위 소음으로 인하여 하루 하루 열심히 사는 선량한 국민을 괴롭혀서는 안되고 이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필자는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근무에 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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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천안동남경찰서, 함께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성숙한 1인 시위문화를 만듭시다(천안동남경찰서 홍지영 경사) [기고문] 함께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성숙한 1인 시위문화를 만듭시다 천안동남경찰서 경비작전계 집회담당 경사 홍지영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서 규정하는 ‘시위’란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도로·광장·공원 등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위 조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시위는 2인 이상이 하는 것으로 정의 되어있어 1인 시위의 경우 집시법에서 시위의 개념에 해당되지 않아 신고대상이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위 조문은 시위의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존중하는 것이 밑바탕에 깔려있고 “혼자하는 1인 시위인데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봤자 얼마나 심하겠어?”라고 생각하며 이런 조문을 만들지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점을 악용하여 일명 “변형된 1인 시위”를 하여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존중 받고 공감 받아야할 시민으로부터 존중과 공감을 받기는 커녕 얼굴을 찌푸리게 하고 심지어 이로 인하여 마찰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변형된 1인 시위에 대해 구체적 사례를 나열하면 ①다수인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상호 연대하여 일정한 거리를 두고 1인 시위 형태로 진행<인간띠잇기> ②동일 장소에서 각기 다른 내용을 가지고 1인 시위 형태로 진행<혼합 1인시위> ③불특정인이 짧은 시간에 행동하고 곧바로 흩어지는 형태로 진행<플래시몹> 등이 있고 이 같은 경우는 판례상 집시법 ‘집회’로 판단하고 있다. 위 예시의 변형된 1인 시위와 겉보기에는 제대로 된 1인 시위라고 하더라도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피켓을 보여주기 위해 도로 안쪽까지 들어오는 위험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확성기 등 이용하여 과도한 소음을 유발하여 112신고가 들어오고 지나가는 시민과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집회참가자 본인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변형된 1인 시위 등의 방법으로 이목을 끄는 것보다 함께 공감할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성숙한 1인 시위로서 마음의 이목을 끌어 마음 대 마음으로서 전달을 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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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아산시공무원노동조합, 공무원도 노동자다! 공무원 노동자에게도 쉼을 허하라![기고문=아산시공무원노동조합] 공무원도 노동자다! 공무원 노동자에게도 '쉼을 허하라!' 매년 5월 1일 노동절 올해 133주년을맞이하는 노동절은 미국에서 1800년대 후반 자본가들의 노동착취에 대항하여 8시간노동제 쟁취와 유혈탄압을 가한 경찰에 대항해 투쟁한 미국노동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계 노동자들이 제정한 뜻깊은 날로 전 세계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의 날이다. 이에 우리나라도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정하고 매년 5월 1일을 「근로기준법」에 따른 유급휴일로 정하고 있으나, 공무원 노동자는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 자녀를 둔 공무원들에게 어린이집 휴무로 발생하는 육아 공백을 어떻게 해결할지 매년 전전긍긍하도록 만들고 있으며, 비공무원의 휴무로 인한 관공서 행정공백은 고스란히 민원불편을 초래했다. 더나아가 공무원도 근로자라 명시된 헌법을 법률이 유린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노동자들에게 주69시간 노동을 얘기하는 현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최장시간 노동을 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그런데 주69시간까지노동시간을 확대할 수 있게 하자는 정부가 제대로 된 정부인지 노동자 모두가 불신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노동자의 사전적인 의미는 '자기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받은 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지금, 이 순간, 120만 공무원 노동자는 본연의 업무 및 재해‧재난 발생 시 빠른 복구를 위해 자신의 영혼이 타들어 가는 것을 감수하면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12시~1시 점심시간’ 이라는 복무규정 자체도 지켜지지 못한 대가로매월 급여를 받는다. 누가 봐도 공무원 노동자가 대한민국의 그저 평범한 노동자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현실은 평범함조차 누리지 못하고 차별받고있다. 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불공정한 일인가? 모든 노동자가 노동절에는 휴일을 보장받고 노동시간이 단축되어야 할 것이다. 근로자의날법과 공휴일에관한법을 개정해야 한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을 중심으로 지난 10년간 120만 공무원의 끈질긴 투쟁 끝에 쟁취한 공무원노조 타임오프제 도입 법안이 지난해 국회 문턱을 넘었다. 당시 정부는 국회에 타임오프제 시행에 따른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며 시행 시기를1년 6개월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다. 1년이 지난 현재, 현실은 어떠한가? 공무원노조 타임오프를 논의할 정부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지금까지아무것도 하고 있지 있으며 고요할 뿐이다. 모범적인 사용자여야 할 정부가 공무원 노동자를 무시하고 공무원노조를 해악 집단인 것처럼 호도하는 지금이 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을 강력히 요구할 시점이다. 1886년 ‘8시간 노동’ 쟁취를 통해 노동조건 개선에 앞장선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부름이 들리지 않는가? 공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희생을 강요받는 시대는 갔다. 공무원도 노동의 대가로 수입에 의존해 생활하는 엄연한 ‘노동자’다. 5월 1일, 공무원 노동자들의 필사적 구조신호가 들리지 않는가? 이제 국회와 정부가 응답할 시간이다. 메이데이(May Day) 메이데이(Mayday)! 공무원 노동자에게도 쉼을 허하라! 2023. 4. 28.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연맹 아산시공무원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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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기자의 세상 돋보기] 사명감을 잃은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이 아니다[뉴스온라인=최순우의 세상 돋보기] 사명감을 잃은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이 아니다 신문윤리강령 제 15조 ‘신문윤리 실천요강 제15조 언론인의 품위’ 조항에는 언론인 뿐 아니라 언론사도 포함해 ‘취재, 보도, 평론, 편집에 관련하여 이해 당사자로부터 금품, 향응, 무료여행초대, 취재여행의 경비, 제품 및 상품권, 고가의 기념품 등 경제적 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언론학계에서는 ‘촌지나 꽁짜 티켓, 경제적 이익을 받은 언론인을 가르켜 “윤락가에서 생존을 위해 몸을 파는 윤락녀"보다 더 못한 하등인간으로 간주할 정도로 언론계에 종사하는 언론인들은 더욱 투명성과 올바른 언행으로 사회의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앞장서야 될 중요한 직책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신문윤리강령 제 15조 ‘신문윤리 실천요강 제 15조 언론인의 품위’를 언론사 스스로 저버린 언론사들이 최근에 대장동 의혹의 중심에 있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에 대한 검찰 수사를 통해 세간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파문을 일고 있다. 대장동 개발사업자 화천대유 대주주이자 ‘머니투데이’ 법조팀장이었던 김만배씨와 중견 언론인들이 수억 원 대 돈을 직접 거래하거나 명품 선물, 골프 접대, 현금 및 상품권 등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참담한 언론윤리 실종 사태를 보여주고 있다. 언론 뿐만 아니라 판사, 검사들이 김만배씨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국민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공정과 상식이 한낱 공염불에 불과했던 그들의 민낯에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현재 김만배씨로부터 돈을 받은 언론사로 거론된 곳은 ▲한겨례 9억▲한국일보 1억▲ 중앙일보 9천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이 미디어를 통해 드러나자 해당 언론사들은 돈을 받은 소속 기자들을 해직하는 것으로 꼬리 자르기를 시도함으로써 대장동 사태에서 책임회피를 하려 분주하고 있다. 그러나 김만배씨로부터 언론만 돈을 받은 게 아니라 검사, 판사 출신들 또한 김씨로부터 돈을 받은 정황이 자금추적을 통해 드러나고 있지만 검찰은 돈을 받은 언론사들만 수사선상에 올려놨을 뿐 검사, 판사들에 대한 수사는 미적거리고 있어 제 식구 봐주기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돈을 받은 언론사의 대장동 보도, 돈을 받은 검찰의 대장동 수사, 돈을 받고 유·무죄를 판결하는 판사들, 과연 그들이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동시에 과연 돈과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자들이 공정과 법·질서를 운운한들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까 이런 처첨한 상황을 목격하다 문득 필자가 학교 다닐 때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언젠가 강의시간에 언론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언론인은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사명감을 망각하는 순간 더 이상 언론인이 아니다” 라며 학생들에게 언론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당부했던 그 말이 다시금 떠오르고 있다. 또 필자가 우연히 야인시대를 재 방송으로 보다 극 중 한 검사가 권력에 굽신 거리는 상사들의 모습을 보고 뱉은 대사가 문득 떠올라 지면에 옮기려고 한다. 그 검사는 권력과 결탁한 상사들의 악행을 참지 못해 사직서를 던진다 이에 상사는 “왜 사직서를 던지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검사는“권력의 개가 되느니 밖에 나가서 편히 사는게 낫지 않겠습니까?”라고 사직서를 던진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충성 많이 하십시오. 그리고 개처럼 사십시오. 주인을 위해서 실컷 짖다가 그렇게 주인한테 잡혀 먹고 마는 개 말입니다”라며 권력의 손을 잡은 검찰 간부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이어 그는 “잘 들어라,이 똥개들아, 열심히 충성하고 계속 짖다가 허망하게 죽을 똥개들아. 권불십년 이라고 했다. 그걸 왜 몰라” 라고 외치는 장면 지금도 뇌리 기억 속에 남는 장면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 이라는 뜻은 ‘권세는 십 년을 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아무리 높은 권세라도 오래가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공무원들에게는 뇌물을 받거나 댓가로 경제적인 이익이나 금품을 받으면 법에 따라 배임 수죄 및 또는 뇌물법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지만 언론인들에게는 그에 해당하는 처벌 규칙이 없다. 단지 윤리적으로 즉 스스로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어쩌면 언론관 없는 부패한 기자들이 근절이 되지 않는 원인 일지도 모른다. 역사는 영원한 것이다. 허나 돈과 권력은 한 줌 흙에 불과 한 것이다. 상식을 지키기 위해 땀 흘려 일하는 기자들은 오늘도 이 세상의 정의를 바로 잡기 위해 뛰고 있는데, 앞에서 이끈다는 언론사를 표방한 사이비 신문사들이 앞에선 말만 뻔지르르하게 떠들고 뒤에서 저지르는 온갖 이권개입과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일관한다면 언론인을 꿈꾸는 예비 언론인들이 어떻게 마음 놓고 지역신문사에 입사할 수 있는 가 반문하고 싶다. 정말 스스로가 참다운 언론인으로 남고 싶다면 측은지심 (惻隱之心)과 사양지심 (辭讓之心) 이 두 가지 고사성어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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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흠의 생각진흙탕 싸움에 빠진 친정집에 충언을 드립니다. 어렵게 정권교체를 이뤘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채 1년도 안 됐습니다. 집권여당은 대통령과 함께 국정운영의 무한한 책임을 지며 정부와 한 몸이 돼야 합니다. 당은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하지만 작금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님들 언행을 보면 사심(私心)만 가득해 보입니다. 사생취의(捨生取義)의 자세로 당을 굳건하게 하고 국정운영을 뒷받침할지 고민할 때입니다. 그리고 나경원 전 의원님.장(場)만 서면 얼굴 내미는 장돌뱅이입니까? 더구나 장관급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은 지 두세 달 만에 대통령과각을 세우며 당 대표로 출마하는 것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이 어느 직책보다 중요한자리입니다. 손에 든 떡보다 맛있는 떡이 보인다고 내팽개치는 사람. 몇 달 만에 자신의 이익을 좇아 자리를 선택하는 사람.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 어찌 당대표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진짜 능력이 있다면 필요할 때 쓰일 것입니다. 가볍게 행동하지 마시고 자중하십시오. 벌써 당이 친이·친박, 친박·비박으로 망했던 과거를 잊었습니까? 과거 전철을 밟지 맙시다. 제발,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자세로 당을 살리고,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마음으로 당을 바로 세웁시다. 2023. 1. 18 김태흠 충남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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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의 청춘은 끝나지 않았다《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표지 [고광석 이야기 산책] 아직 나의 청춘은 끝나지 않았다 1945년 2월 16일, 시인 윤동주는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의 차가운 감방에서 스물아홉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윤동주가 숨진 곳이라서 그런지 후쿠오카에는 놀라울 정도로 그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윤동주 시인의 사망 66주기를 사흘 앞둔 2011년 2월 13일 오후, 그가 숨진 후쿠오카 형무소 뒤편의 놀이터에서 추도식이 열렸다.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이 매년 시인의 기일에 맞춰 추도식을 한 지 벌써 17년째다. 추도식은 윤동주의 영정에 헌화하고 그의 시를 낭독하는 순으로 진행됐다. 회원들은 각자가 좋아하는 시를 돌아가며 낭독했다.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 회원인 요시오카 미호는 일본어로 ‘쉽게 씌어진 시’를 읽다가 울먹였다. 그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지만 일본인으로서 시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쉽게 씌어진 시’를 읽을 때면 언제나 그의 고뇌가 느껴져 눈시울이 붉어집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후쿠오카대학교 구마키 츠토무 교수는 “일본인들은 윤동주의 시에서 묻어나는 순수함과 애틋함을 사랑한다”라며 “특히 후쿠오카 사람들은 그가 돌아가신 곳에 살고 있어 그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라고 설명했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쉽게 씌어진 시>는 1942년 4월 2일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한 윤동주가 6월 3일에 쓴 시이다. 육첩방은 일본식 돗자리가 여섯 장 깔린 방으로, 낯선 나라임을 뚜렷이 느끼게 해 주는 공간이다. 시적 화자는 육첩방에 앉아 창 밖에 내리는 밤비를 보고 있다.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화자는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고뇌에 빠져든다. 새로운 학문을 배우려고 유학을 왔지만 막상 마주친 것은 늙은 교수의 낡고 메마른 지식이었다.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학비를 받아 무의미한 유학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든다. 어렸을 때 함께 자랐던 동무들이 하나 둘 사라지던 시절, 이국땅인 일본에서 암울한 현실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그저 한 줄 시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그 인생을 담은 시를 쉽게 쓴다는 것은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다. 자신의 생각 속에 깊이 침전하면서 화자는 수없이 반성한다. 결국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는 부끄러움에 빠져 있었던 과거의 ‘나’에게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의 악수를 건넨다. 윤동주의 연희전문 문과 동기인 강처중은 해방 후에 《경향신문》 기자로 있었다. 윤동주가 가장 좋아한 시인 정지용은 1946년 10월 1일부터 1947년 7월 8일까지 《경향신문》 주간으로 재직했다. 1947년 2월 13일, 강처중은 정지용의 소개 글을 붙여 《경향신문》에 윤동주의 시 <쉽게 씌어진 시>를 실었다. 윤동주의 후배 정병욱은 윤동주에게서 19편의 시가 담긴 필사본 시집 한 권을 받아 해방될 때까지 보관하고 있었다. 강처중은 일본 유학을 떠나는 윤동주가 서울에 두고 간 시들과 도쿄에서 자신에게 보낸 편지 속에 적어 넣었던 시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강처중은 정병욱이 보관해낸 시들과 자신이 보관해낸 시들 중에서 31편의 시를 골라내어 시집을 엮고 정지용에게 서문을 받았다. 드디어 시인이 태어난 지 만 30년 1개월 만인 1948년 1월 30일에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1941년 11월 5일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그리워하며 <별 헤는 밤>을 쓴 윤동주는 졸업 기념으로 시집을 출판하려고 하였다. 시집 첫머리에 놓을 <서시>를 완성한 것이 1941년 11월 20일이었다. 도종환 시인은 “윤동주의 ‘서시’와 같이 사람들에게 널리 기억되는 한 편의 시는 영원히 민족과 함께하는 생명력이 있다”라고 말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서시> 이 시의 화자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소망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순결한 삶을 살고자 했던 시적 화자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고 고백한다. 도덕적 순결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사소한 흔들림도 용납하지 않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는 작은 흔들림에 고뇌하는 화자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가장 순수하고 양심적인 자세를 가리킨다. 시적 화자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하면서 부끄럼 없는 삶의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한다. 마치 어두운 밤하늘에 맑게 빛나는 별과 같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윤동주의 <서시>를 처음 읽던 순간 마음이 한껏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를 읽으면서 마치 순결한 영혼에 감전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삶을 그려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 비로소 ‘시’가 마음속 깊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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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고광석 이야기 산책]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꽃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 순한 얼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 도종환, <라일락 꽃> 세상을 살다보면 자신의 삶이 초라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온갖 어려움을 당하여 삶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가끔은 여태껏 살아온 모습을 벗어나서 다른 존재로 거듭나기를 바랄 때도 있다. 그런 순간에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는 시인의 말은 적잖은 위로가 된다. 못나고 부족한 면이 있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라고 다독여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지금껏 살아온 나의 삶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2009년 4월 도종환 시인이 온종일 비가 내리는 날에 거리를 걸어가는데 어디서 달콤한 향기가 번져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골목 끝에 라일락 꽃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시인은 라일락 꽃 옆을 서성이다가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라는 꽃의 말을 들었다. 라일락 꽃은 여린 연보라색이라 비에 젖으면 금방 지워질 것 같은데도 제 빛깔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도종환은 내일 또 비에 젖어도, 내년에 다시 비에 젖어도 제 빛깔 제 향기를 잃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어서 <라일락 꽃>이란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제대한 후 도종환이 복직한 곳은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에 있는 부강중학교였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첫아기가 태어났다. 이듬해 봄에 그의 아내가 토혈했다. 병원에서는 십이지장궤양이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가을에 또 토혈했다. 의사는 피가 고였다 넘어오는 것 같으니까 수술하자고 했다. 수술하면 뱃속의 아이를 지워야 하므로 약물치료를 선택했다. 겨울을 지내고 무사히 딸아이를 낳았다. 겨우 몸을 추스른 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암인 것 같다며 서울로 가보라고 권했다. 서울의 원자력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았더니 암에 걸려서 길어야 여섯 달 아니면 한두 달밖에 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도종환은 차마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아 아내에게 병명을 알려주지 못하고 자꾸 미루기만 했다. 암에 걸렸다는 말을 더 미룰 수 없게 된 날, 어떤 방식으로 말을 해주어야 할지 고민하며 밤을 새우다시피 하였다.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투두둑 떨어지는 밤이었다. 아침에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로 출근하는데, 시골집 담벼락에 줄지어 핀 하얀 접시꽃이 눈에 들어왔다. 몸에서 피가 계속 빠져나가 창백해져 있는 아내의 얼굴과 접시꽃이 겹쳐 보였다. 빈 도서실로 올라가 아내에게 해줄 말을 종이에 쓰기 시작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어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 도종환, <접시꽃 당신> 병상에서 이 시를 읽어주며 도종환 시인은 울었지만 아내는 울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자기가 죽거든 눈을 다른 이에게 기증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견우직녀가 한 해 한 번 만나는 칠석날, 서른두 살의 동갑내기 아내를 옥수수밭 옆에 묻었다. 도종환의 아내는 생전에 병상에 누워 “그동안 당신의 뒷모습만 보면서, 그 뒷모습을 용서하면서 살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내가 말한 ‘당신의 뒷모습’은 아침이면 학교로 가는 뒷모습, 돌아오면 책상에 앉아 있는 뒷모습, 시를 쓴다는 이유로, 공부한다는 이유로 그냥 지켜보아야 하는 뒷모습이었다. 도종환의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에는 ‘우리가 배우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배우자에게 처음보다 나아지고 흥미로운 나를 선물하는 것’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제임스 홀리스가 했다는 그 말을 되새겨 볼 때마다 ‘접시꽃 당신’을 향한 그의 애절한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짜릿하다. 도종환은 두 번째 시집 《접시꽃 당신》을 펴낸 1986년부터 문화운동 단체와 교육운동 단체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1986년 12월 4일에 결성한 충북문화운동연합의 공동의장을 맡았다. 1986년 1월 15일 새벽, 어느 여중생이 유서를 써 놓고 세상을 떠났다. 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난 인간인데 난 친구를 좋아할 수도 있고 헤어짐에 울 수도 있는 사람인데 모순, 모순, 모순이다 경쟁! 경쟁! 공부 공부 순수한 공부를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멋들어진 사각모를 위해 잘나지도 않은 졸업장이라는 쪽지 하나 타서 고개 들고 다니려고 하는 공부 공부만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 공부만 한다고 잘난 것도 아니잖아!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해 이 사회에 봉사하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그것이 보람 있고 행복한 거잖아 꼭 돈 벌고 명예가 많은 것이 행복한 게 아니잖아 나만 그렇게 살면 뭘 해 난 로보트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다 밟히다 밟히다, 내 소중한 삶의 인생관이나 가치관까지 밟혀 버릴 땐 난 그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떤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청주대 무용학과 강혜숙 교수는 우리춤연구회와 함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무용극을 만들었다. 당시 옥천군에 있는 동이중학교에 근무하던 도종환은 대본을 쓰는 일에 참여했다. 무용극을 공연할 때 조명을 끈 상태에서 배우가 낭독하는 여중생 O양의 유서는 많은 이들을 울렸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그해 겨울부터 전국 20개 도시에서 80회 이상 순회공연을 하였다. 1989년에는 배우 이미연과 김보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도종환은 1994년에 여섯 번째 시집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를 출간했다. 그 시집에 실려 있는 시 중의 하나가 <흔들리며 피는 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꽃은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는 존재이다. 꽃이 바람에 흔들리거나 비에 젖는 일은 고난을 겪는 것이다. 그런데 고난이나 시련을 거치지 않으면 무엇 하나 훌륭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대나무가 휘어지지 않고 똑바로 자랄 수 있는 것은 줄기의 중간 중간을 끊어주는 시련이라는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으며 피었기에 꽃은 더욱 아름답고 빛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시련이나 고난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시인은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다’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 ‘빛나는 꽃들도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다’며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있다. 시인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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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벗으면 다시 또 잘려나간 발가락 하나(소록도에 있는 한하운 시비) [고광석 이야기산책]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한 뒤에 이북 지역에는 소련군이 진주하였다. 소련 군정이 시행되면서 함흥의 지주였던 한하운의 집안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빈민의 처지로 전락했다. 그때부터 한하운의 남동생은 김일성 정권을 타도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집 창고에 무기와 탄약을 숨겨 두었다. 한하운의 끈질긴 만류를 뿌리치고 동지들과 함께 거사를 실행하려던 한하운의 동생은 1947년 4월 3일 보안대원들에게 연행되었다. 한하운도 체포되어 두 달 넘게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한하운은 잘 먹지 못한 데다가 날마다 취조를 받고 고문을 당해 나병이 재발하였다. 한하운은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38선을 넘어가 대구, 부산 등지로 돌아다니며 치료약을 구한 다음 겨울에 다시 북으로 돌아온다. 그는 동생의 행방을 찾아 고향으로 가는 도중에 허가를 받지 않고 이남에 갔다 왔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원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8년 여름 한하운은 목숨을 걸고 형무소를 탈출하였다. 한 달간 맨발로 걸어 38선 너머 한탄강에 도착하였지만 이남 땅에는 한하운을 반갑게 맞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시는 이북 땅을 밟지 못하였다. 한하운이 자유를 찾아 떠난 길은 결국 가족과 영영 이별하는 길이 되고 말았다. 한하운은 사랑하는 가족이 없는 남한 땅을 떠돌다가 소록도로 가면서 쓴 시 <전라도 길>에서 당시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 리, 먼 전라도 길 - 한하운, <전라도길> 소록도는 나병 환자를 집단으로 수용하고 치료하는 시설이 있는 곳이다. 한하운은 천안을 지나 전라도의 끝인 소록도로 가고 있다. 황톳길을 걸어가다가 나무 밑에서 쉬며 신발을 벗으면 어느 틈엔가 다시 또 잘려나간 발가락 하나……. 이제 남은 발가락은 두 개밖에 없다. 발가락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발로 가도 가도 천 리, 먼 전라도 길을 걸어갈 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한하운은 1949년 5월에 <전라도 길>을 비롯한 시 25편을 묶어 첫 시집 《한하운 시초》를 발간하였다. 한하운의 시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지만 남쪽 문단에서 그의 활동은 순탄하지 않았다. 나병 증세는 이미 얼굴에까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어 문인들은 그를 마주치기만 하면 외면했고, 작품을 들고 잡지사에 찾아가면 원고를 만지는 것조차 꺼렸다. 그래도 한하운은 인간의 존엄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1955년과 1957년에 각각 시집 《보리피리》,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를 출간하였다. 또한 나환자 정착촌인 성계원을 설립하여 자치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나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사업에도 힘썼다. 1960년엔 나병이 음성이라는 판정을 받으면서 더욱 활발히 사회활동을 하였는데, 1968년 나병을 치료하기 위한 투약으로 간경화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어머니 병들어 죽으실 때 날 두고 가신 길을 슬퍼하셨다”라고 노래했던 시인 한하운은 1975년 2월 28일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그의 시비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면 소록도에 세워져 있다. 소록도는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마태복음 25장 40절, 4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