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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의 청춘은 끝나지 않았다

기사입력 2023.01.1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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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광석 이갸기 산책.png

     

     

    사진 13.jpg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초판본 표지

     

     

     

    [고광석 이야기 산책] 아직 나의 청춘은 끝나지 않았다

     

    1945216, 시인 윤동주는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의 차가운 감방에서 스물아홉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윤동주가 숨진 곳이라서 그런지 후쿠오카에는 놀라울 정도로 그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윤동주 시인의 사망 66주기를 사흘 앞둔 2011213일 오후, 그가 숨진 후쿠오카 형무소 뒤편의 놀이터에서 추도식이 열렸다.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이 매년 시인의 기일에 맞춰 추도식을 한 지 벌써 17년째다. 추도식은 윤동주의 영정에 헌화하고 그의 시를 낭독하는 순으로 진행됐다. 회원들은 각자가 좋아하는 시를 돌아가며 낭독했다.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회원인 요시오카 미호는 일본어로 쉽게 씌어진 시를 읽다가 울먹였다. 그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지만 일본인으로서 시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쉽게 씌어진 시를 읽을 때면 언제나 그의 고뇌가 느껴져 눈시울이 붉어집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후쿠오카대학교 구마키 츠토무 교수는 일본인들은 윤동주의 시에서 묻어나는 순수함과 애틋함을 사랑한다라며 특히 후쿠오카 사람들은 그가 돌아가신 곳에 살고 있어 그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라고 설명했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쉽게 씌어진 시>194242일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한 윤동주가 63일에 쓴 시이다. 육첩방은 일본식 돗자리가 여섯 장 깔린 방으로, 낯선 나라임을 뚜렷이 느끼게 해 주는 공간이다. 시적 화자는 육첩방에 앉아 창 밖에 내리는 밤비를 보고 있다.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화자는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고뇌에 빠져든다. 새로운 학문을 배우려고 유학을 왔지만 막상 마주친 것은 늙은 교수의 낡고 메마른 지식이었다.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학비를 받아 무의미한 유학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든다.

     

    어렸을 때 함께 자랐던 동무들이 하나 둘 사라지던 시절, 이국땅인 일본에서 암울한 현실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그저 한 줄 시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그 인생을 담은 시를 쉽게 쓴다는 것은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다.

     

    자신의 생각 속에 깊이 침전하면서 화자는 수없이 반성한다. 결국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는 부끄러움에 빠져 있었던 과거의 에게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의 악수를 건넨다.

     

    윤동주의 연희전문 문과 동기인 강처중은 해방 후에 경향신문기자로 있었다. 윤동주가 가장 좋아한 시인 정지용은 1946101일부터 194778일까지 경향신문주간으로 재직했다. 1947213, 강처중은 정지용의 소개 글을 붙여 경향신문에 윤동주의 시 <쉽게 씌어진 시>를 실었다.

     

    윤동주의 후배 정병욱은 윤동주에게서 19편의 시가 담긴 필사본 시집 한 권을 받아 해방될 때까지 보관하고 있었다. 강처중은 일본 유학을 떠나는 윤동주가 서울에 두고 간 시들과 도쿄에서 자신에게 보낸 편지 속에 적어 넣었던 시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강처중은 정병욱이 보관해낸 시들과 자신이 보관해낸 시들 중에서 31편의 시를 골라내어 시집을 엮고 정지용에게 서문을 받았다. 드디어 시인이 태어난 지 만 301개월 만인 1948130일에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1941115일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그리워하며 <별 헤는 밤>을 쓴 윤동주는 졸업 기념으로 시집을 출판하려고 하였다. 시집 첫머리에 놓을 <서시>를 완성한 것이 19411120일이었다. 도종환 시인은 윤동주의 서시와 같이 사람들에게 널리 기억되는 한 편의 시는 영원히 민족과 함께하는 생명력이 있다라고 말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서시>

     

    이 시의 화자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소망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순결한 삶을 살고자 했던 시적 화자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고 고백한다. 도덕적 순결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사소한 흔들림도 용납하지 않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는 작은 흔들림에 고뇌하는 화자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가장 순수하고 양심적인 자세를 가리킨다. 시적 화자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하면서 부끄럼 없는 삶의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한다. 마치 어두운 밤하늘에 맑게 빛나는 별과 같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윤동주의 <서시>를 처음 읽던 순간 마음이 한껏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를 읽으면서 마치 순결한 영혼에 감전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삶을 그려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 비로소 가 마음속 깊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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