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영이 어머니는 중학교 3학년인 딸이 학교에 내야 할 돈이 있다고 해서 10만 원짜리 수표를 주었다. 세영이는 친한 친구 두 명과 마침 지나가던 친구 한 명, 이렇게 셋이 보는 데서 수표라고 걱정하며 책가방에 달린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에 그 수표가 사라져버렸다. 세영이는 의심이 가는 친구 앞에서 수표가 없어졌다는 얘기를 하면서 표정을 살폈지만 시치미를 딱 떼었다. 세영이 어머니와 세영이는 결국 본인이 잘 간수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며 포기하기로 했다.
세영이 어머니는 딸의 졸업식을 앞두고 이러한 사실을 담임선생님께 말씀 드려서 얼마 남지 않은 아이들의 중학교 생활을 어수선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그 친구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의심 가는 것이지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그런데 같은 학부모로 알게 되어 가깝게 지내는 선물 가게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할 얘기가 있다며 꼭 들르라고 했다. 세영이 어머니를 만나자 그는 “세영이 엄마, 혹시 미숙이네랑 돈 거래하세요?” 하고 물었다. 세영이 어머니는 가슴이 철렁했다. 딸이 며칠 전 수표를 잃어버리고 의심했던 그 아이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아니요, 왜요?”
그는 1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내밀었다. 얼른 뒷면을 보았다. 세영이 어머니가 서명한 자리 아래에 미숙이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세영이 어머니는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분이 말했다.
“어쩐지 미숙이의 행동이 이상했어요. 삼천오백 원짜리를 사면서 10만 원짜리 수표를 내놓더라고요. 서명을 하라고 했더니 ‘꼭 해야 돼요?’ 하는 거예요. 우물우물하더니 쓰더라고요. 좀 의심이 갔는데 세영이 어머니의 서명이 있었어요. 제가 보기엔 아무래도 이상했어요.”
“실은 그 수표가…….”
세영이 어머니는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리고 그 수표를 현금과 바꾸어 가졌다. 그렇지만 선물 가게 주인에겐 비밀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담임선생님과 의논을 해? 미숙이를 만나? 아니, 미숙이 어머니를 만나? 만나서 뭐라고 말하지?’ 세영이 어머니는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다. 세영이 어머니는 딸의 졸업식 날 미숙이에게 카드와 꽃을 주었다. 카드에는 세영이 어머니의 정성을 담아 편지를 썼다.
미숙아 졸업을 축하한다.
나무가 자라면서 때때로 벌레 먹고 죽어가는 가지가 있단다. 그 가지를 그냥 두면 나무 전체가 죽을 수도 있단다. 그러므로 그 가지는 잘라내야 한단다. 잘라내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세영이가 학교에서 잃어버린 수표를 선물 가게 아주머니에게서 10만 원과 바꿨단다. 이 일은 선물 가게 아주머니와 너와 나만 알고 있단다. 네가 건강한 나무로 자라기를 기도한다. 이 수표는 네 졸업 선물이다. 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늘 바라볼 거야.
세영이 엄마가
미숙이는 교문을 나서는 세영이 어머니에게 쫓아와 “아주머니, 감사합니다.”하면서 자기가 받은 꽃다발을 주었다. 그리고 세영이 어머니를 바라보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 눈물이 그렇게 아름답게 반짝일 수가 없었다.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을 새롭게 고쳐 쓴 글이다. 아마 미숙이는 세영이 어머니한테 받은 멋지고 아름다운 선물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